AI 시대에 암기 과목을 공부해야 하는 의외의 이유
"검색하면 1초 만에 다 나오는데, 이걸 왜 외워야 하죠?" "시험 끝나면 다 잊어버릴 텐데, AI 시대에 이건 시간 낭비 아닐까요?" 암기 과목을 공부하며 한 번쯤 이런 억울함을 느껴봤을 것이다. 힘들게 외우고 있는 자신과 너무나 쉽게 답을 찾는 AI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하는 암기가 단순히 정보 저장이 아니라 AI 시대에 더 강력한 생각의 무기를 만드는 과정이라면 어떨까. AI가 할 수 없는 것을 해내기 위해 역설적으로 우리에겐 기본적인 암기가 필요하다. 그 이유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들여다보자.
- 3초 안에 판단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회의 중에 상사가 갑자기 "이 문제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는다. 이때 "잠깐만요, 검색 좀 해볼게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고객이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졌을 때 영업 사원이 "AI한테 물어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라고 한다면 그 고객은 어떤 느낌을 받을까.
우리의 삶은 검색창 앞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친구와의 대화, 토론, 예상치 못한 문제 해결, 면접 등 실시간으로 판단하고 반응해야 하는 순간이 훨씬 많다. 머릿속에 지식이 있다는 건 즉석에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검색은 3분이 걸리고 AI 답변을 읽고 이해하는 데 1분이 걸리지만 이미 아는 사람은 3초 만에 핵심을 짚어낸다.
그 2분 57초의 차이가 신뢰를 만들고 기회를 잡고 프로젝트의 방향을 결정한다. 기본적인 지식이 머릿속에 체화되어 있으면 검색할 필요 없이 즉시 반응할 수 있다. 이것이 생각의 속도다.
- 점이 없으면 선을 그을 수 없다
AI는 수많은 점, 즉 개별 사실과 데이터를 우리보다 훨씬 많이, 빨리 찾아준다. 하지만 그 점들을 연결해서 의미 있는 선이나 그림, 즉 통찰과 아이디어를 그리는 건 결국 사람의 몫이다.
체스 고수들은 약 50,000개의 체스 패턴을 기억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수많은 경우의 수 중에서 최선의 수를 빠르게 찾는다. 의사는 수천 개의 증상 패턴을, 변호사는 수많은 판례 패턴을, 개발자는 코드 패턴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청킹이다.
여러분이 지금 공부하며 외우는 역사적 사건들, 과학 법칙들, 문학 작품들은 나중에 사회 문제를 이해하고 제품을 기획하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순간에 패턴으로 작동한다. 힘들게 역사를 외우고 공식을 외우는 건 재료들을 내 머릿속에 부어 넣는 것과 같다. 당장은 뒤섞여서 혼란스럽지만 이 재료들은 내 머릿속에서 서로 붙고 섞이고 연결되며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준비를 한다.
- AI를 제대로 쓰려면 오히려 더 많이 알아야 한다
더 역설적인 사실이 있다. AI를 잘 활용하려면 배경지식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ChatGPT에게 효과적인 질문을 던지려면 내가 무엇을 물어야 할지 알아야 하고 AI가 준 답변이 맞는지 틀렸는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마케팅 전략 세워줘"라고 물으면 두루뭉술한 답이 나오지만 "Z세대 타겟 친환경 화장품의 SNS 바이럴 전략, 참고 사례는 러쉬와 글로시에"라고 구체적으로 물으면 훨씬 유용한 답을 얻는다. 이 차이는 내가 얼마나 많은 패턴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느냐에서 나온다.
아무것도 모르는 0의 상태에서는 AI에게 무엇을 물어봐야 할지조차 모른다. 머릿속에 기본적인 점들이 있어야 "어? 이거 혹시 저거랑 관련 있지 않을까?" 하는 연결고리가 보이고 AI를 활용한 창의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다. AI 시대의 핵심 역량은 정답을 찾는 능력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던지는 능력이다. 그리고 좋은 질문은 배경지식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