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생이 미리 알면 좋을 현실 직무 이해 - 기자]
기자는 특종을 쫓는 사람이 아니다. 매일 불확실성과 타협하며, 자기 자신과 싸우는 사람이다.
많은 학생들이 기자를 상상할 때, 극적인 순간을 떠올린다. 숨겨진 진실을 밝혀내고, 세상을 바꾸는 특종을 터뜨리는 모습. 하지만 현실의 기자는 그보다 훨씬 더 고독하고 섬세한 싸움을 한다.
특종보다 무서운 건 '팩트체크'고, 마감보다 두려운 건 '내 이름이 남는 기록'이다.
기자는 특종을 터뜨리는 사람이 아니다. 매일 불확실성 속에서 판단하고, 불완전함을 인정하며, 자기 이름에 책임지는 사람이다.
화려한 순간보다 지루한 반복이 더 많고, 글 쓰는 시간보다 듣고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다. 그럼에도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잊히지 않도록 기록하는 일이 여전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 팩트체크: 세상의 거짓이 아니라, 내 확신과 싸운다
팩트체크라고 하면 거짓 정보를 걸러내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기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은 외부의 거짓이 아니다. 바로 '내가 믿고 싶은 이야기'다.
취재를 시작할 때, 기자는 이미 마음속으로 어느 정도 결론을 내려놓고 시작한다. "이 사건은 분명 저쪽이 잘못했을 거야." 그런데 취재 과정에서 반대 증거가 나온다. 이때 진짜 팩트체크가 시작된다.
내가 세운 가설을 뒤집고, 쓰려던 특종을 스스로 엎어야 하는 순간. 이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다. 확증편향을 이기지 못하면, 아무리 취재를 많이 해도 결국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된다.
기자의 첫 번째 직무는 세상의 거짓과 싸우는 게 아니다. 매일 자기 자신의 편견과 맞서는 일이다.
- 마감 시간: 빨리 쓰라는 게 아니라, 불완전함을 인정하라는 신호다
"마감에 쫓긴다"는 말은 시간이 부족하다는 뜻만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더 이상 확인할 시간이 없으니,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으로 책임지고 써라"는 뜻이다.
기자는 늘 불완전한 정보 속에서 판단한다. 완벽하게 모든 걸 알 수는 없다. 그래서 마감 시간은 "여기까지만 확인됐다. 나머지는 아직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해야 하는 지점을 알려준다.
더 무서운 건, 한번 나간 기사는 포털에 영구히 남는다는 점이다. 급하게 달았던 제목 하나, 서둘러 쓴 문장 하나가 누군가의 인생에 평생 따라붙는다. 그래서 기자는 "오늘 기사"를 쓰는 게 아니라 "10년 뒤에도 다시 읽을 수 있는 기사"를 써야 한다.
마감은 단순한 시간표가 아니다. 내 이름에 책임지는 훈련이다.
- 사람과의 거리: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 안 된다
기자는 누군가의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다. 장례식장, 재난 현장, 법정. 그곳에서 "지금 심정이 어떠신가요?"라고 묻는다.
이 질문은 잔인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질문의 본질은 "당신의 이야기를 세상이 기억하도록 돕겠다"는 약속이어야 한다. 문제는 그 선을 유지하는 게 너무 어렵다는 점이다.
너무 감정이입을 하면 기사를 쓸 수 없다. 눈물이 먼저 나오면 펜을 들 수 없다. 하지만 너무 냉정하게 거리를 두면, 그 사람은 그냥 '소재'가 되어버린다. 숫자가 되고, 제목이 된다.
기자는 공감 능력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그 공감에 완전히 빨려들지 않는 기술도 배워야 한다. 이 균형을 잡는 게 평생의 숙제다.
- 글 쓰는 시간보다, 말이 안 통하는 시간이 더 길다
기자의 일과를 상상하면 이렇다. 취재한다 → 정리한다 → 기사 쓴다 → 송고한다. 그런데 현실은 중간에 이런 것들이 끼어든다.
연락이 끊기는 취재원.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라는 답변. "이 부분은 빼주세요"라는 반복되는 요청. 정작 중요한 정보는 보도자료 어디에도 없고, 끝까지 숨긴다.
기자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기보다, 말이 안 통하는 상황에서도 의미 있는 정보를 하나라도 더 끌어내는 사람에 가깝다. 질문하는 기술, 거절을 견디는 내구성, 상대가 말하지 않는 것을 눈치채는 감각이 필요하다.
화려한 문장력보다, 이 지루하고 반복되는 소통의 시간을 버티는 힘이 기자의 진짜 자산이다.
- 정의감은 출발점이지만, 지속 가능한 루틴이 도착점이다
많은 기자 지망생이 정의감으로 시작한다. "이런 부조리는 꼭 알려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런 일도 자주 생긴다.
열심히 취재해서 보도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없다. 분명히 문제인데, 비슷한 기사가 계속 나가도 세상은 잘 바뀌지 않는다. 회사 사정, 광고, 관계 때문에 하고 싶은 기사를 못 내보내는 날도 많다.
이때 정의감이라는 에너지는 금방 소진된다. 오래 버티는 기자들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생각한다.
"완벽하게 바꾸진 못해도, 최소한 이 일에 기록을 남겼다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 "내 기사 한 편이 오늘 한 사람의 선택을 조금이라도 다르게 만들 수 있다면."
이상주의를 버리는 게 아니다. 이상주의를 오래 지키기 위한 현실적인 기술을 배우는 것이다.